‘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는 말은 성경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현장 간음죄는 돌로 쳐 죽이도록 돼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에게 어떻게 할지 질문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은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합니다. 저 사람이 비록 법적으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나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죄를 지은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구절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위해 남에게 이 구절을 들이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자의 예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계 취재를 하다보면 여자와의 불륜관계를 간혹 전해듣게 됩니다. 그리고 기사화하는데 대해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지위와 영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저항은 만만치 않습니다. 종교를 통한 권위의 벽은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그리고 제시하는 성경구절 여럿 중에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한 후 회개한 시편 51편이나 요한복음 8장의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는 구절을 언급합니다. 어떤 사람은 허리 아래에서 발생하는 일은 원래 기사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가는 상대방의 불륜 파일을 갖고 협상카드로 쓴다는 말도 들립니다. 북한문제도 그렇고 러시아와 트럼프의 최근 논란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2016년 말부터 진행되는 한국의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갈 때까지 갔구나! 이 분위기로 간다면 곧 드라마가 종영할 듯도 해 보입니다.
예수님은 현장에 붙잡혀 온 간음한 여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까요? 아니 어쩌면 간음한 여인보다 그 여인을 데려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더 할말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특검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삼성과 밀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어떤 여자에게 칼끝을 겨누게 될 것입니다. 유독 이 시점에 요한복음 8장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성은 웬만해서 남에게 돌을 들지 않는 평화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터전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항전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돌을 들고 먼저 치지 않으면 상대방이 총(=권력)으로 나를 위협한다고 생각할 경우.
내가 돌을 던지는 행위는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돌을 들지않고 상대방의 총을 뺏을 수 있다면, 이는 참으로 인류역사에 찾아보기 힘든 지혜로운 민족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 지혜를 위해 멀리 미국에서 기도하겠습니다.
Ston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