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남 유다의 선지자다.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하던 주전 722년을 전후로 활동했던 선지자다. 이사야는 북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남 유다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성격을 띠게됐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그 명령을 따르면 구원을 받겠으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엄한 심판과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란 메시지였다. 이사야의 준엄한 메시지 덕분이었는지 예루살렘은 앗시리아의 전면 공격을 받았을 때에 그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히스기야를 선두로 한 전 예루살렘 거민들의 기도로 앗시리아의 18만 5천명을 물리치게 된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시체로 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앗시리아는 예루살렘과의 공성전 실패로 제국의 힘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당한다. 남 유다는 마치 자신이 앗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린 것처럼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전 586년 경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의해 예루살렘은 철저한 유린을 당하게 된다. 이사야가 그렇게 조심할 것을 외쳤건만 남 유다의 귀에는 이사야의 말이 먼 산에 개 짖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왜냐하먄 히스기야 시대에 세계 최강대국인 앗시리아와 겨루어 이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한반도에 사는 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남북으로 나누어진 한반도는 같은 동족이었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와 이집트는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남 유다에는 친 앗시리아파와 친 이집트파가 있었다. 현재 한국에는 친 중국파와 친 미국파가 대립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경제와 삶이 어떻게 철저히 유린 당하는지를 보아왔다. 그리고 남한의 경제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급성장을 체험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9997년 IMF와 2008년 세계 경제침체를 통해 경제적인 성장이 전부가 아니란 메시지를 보냈다.
이사야는 당시 남 유다를 향해 정의를 실천할 것과 고아와 과부를 돌볼 것과 진정한 회개를 강조했다. 대한민국에는 보편적인 정의가 사라진지 오래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고아와 과부보다는 박정희 이후 개발독재의 혜택을 입은 기업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큰소리치고 있다.
교회는 국가권력에게 표를 주는 대신, 자신들을 위한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백성들 편에 서야 할 제사장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조직 유지와 성장에 급급하다. 가장 대형교단이라고 자처하는 모 교단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법적 조처를 발표하기도 한다.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유다가 이만큼이나 타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사야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위해 철저한 회개를 촉구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작금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을 때 ‘설마 기독교인이 가장 많다는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했던 그 설마를 현실로 바꿀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야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고아와 과부를 보살피고 정의를 실천할 경우에는 한없는 축복이 임할 것임을 예언한다. 그 선택의 출발은 강대국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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